작년 가을, 동기와 함께 할로윈 분위기로 집을 꾸미기 위해 의정부‧양주 일대를 샅샅이 돌았으나 만족스러운 소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중고거래 앱 ‘당근’에서 어린이집이 폐원하며 정리 중이던 ‘할로윈 풀세트’를 발견해 단숨에 거래를 성사시켰고, 덕분에 공간을 완벽하게 변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준비부터 완성, 그리고 손님 반응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금요일 밤 그녀에게 건 전화, 토요일의 쇼핑 작전이 시작되다
작년 10월 첫째 주 금요일 밤, 민박 거실 블라인드 틈 사이로 가을 달빛이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할로윈을 연출하고 싶다’는 욕심이 번뜩이자 나는 곧장 대학 동기인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는 확실히 이쪽으로 지식이 풍부한 그녀였다.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구현이 막막해, 도와줄 수 있어?”라는 질문에 그녀는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으로 답했다. “좋아. 내일 점심 의정부역에서 만나자.” 전화를 끊고 핀터레스트 보드에 ‘러스틱 호러’·‘키즈 프렌들리’ 태그를 붙이고, 중고거래 앱 ‘당근’에 ‘할로윈 장식 풀세트’ ‘호박 전구’ ‘빈티지 촛대’를 알림어로 설정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도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 한가운데 불씨 같은 설렘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의정부‧양주를 헤맨 허전함,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건진 황금 풀세트
토요일 열두 시, 의정부역 앞에서 동기를 만났다. 첫 코스였던 다이소에서 무광 호박, 거미 모양 펠트, 꼬마 전구를 담았지만 색감이 어딘가 투박했다. 이어 간 백화점 DIY 존은 품절 천국, 양주도 가격과 퀄리티가 어긋났다. 오후 세 시가 넘어 우리는 허전한 장바구니를 들고 의정부 뒷골목 일식집에 들어갔다. 밥을 먹으며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오가던 순간 ‘띵’ 당근 알림이 울렸다. **“어린이집 폐원 정리‧할로윈 소품 풀세트‧의정부 직거래, 4만 원”**. 썸네일에는 호박 전구, 거미줄 레이스, 해피 할로윈 가랜드, 유령 행잉, LED 촛불까지 빼곡했다. 위치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덕양구. 우리는 밥을 빠르게 해치우고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판매자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문을 닫게 된 원장님이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던 장식인데 이제 필요 없어요”라는 말에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박스 두 개에 포장된 소품을 꺼낼 때마다 그녀는 체크리스트에 V자를 빠르게 그었고,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현금을 건넸다. 누군가의 불운이 내게는 기묘한 행운이 된 순간, 상자를 뒷좌석에 실며 “이 장식에 새 추억을 만들어 줄게요”라고 속으로 약속했다. 동기를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나 빠른 템포로 지나간 하루를 조금 정리하며 소파에 앉아 눈을 잠시 감았다. 다음날 오전부터 동기와 열심히 머리를 맞대며 꾸미기 시작했다. 거미줄 레이스와 유령 행잉을 문 위에 고정하고, 거실 블라인드에는 ‘HAPPY HALLOWEEN’ 가랜드를 걸었다. 천장 가까이에 호박 전구 스트링을 물결 모양으로 늘어뜨리고, 테이블 중앙엔 호박 양동이와 LED 촛불을 삼각형으로 배치해 균형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복도 벽에 박쥐 스티커를 소용돌이 패턴으로 붙이니 공간이 툭 트여 보였다. 허기를 달래려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가져와 거실 카펫 위에 앉았다. 주황 전구가 치즈 같이 늘어나는 풍경은 작은 연극 같았다. 그녀가 “어린이집 원장님께 사진 보내 드릴까?”라고 묻자 나는 “반드시!”라고 답했다. 피곤했지만, 만족감이 엔진처럼 에너지를 뿜어냈다. 누군가의 불행이 내 행운이 된, 이상하면서도 감사한 우연의 열기가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손님들의 탄성, 기록의 자리에 남은 주황빛
장식을 마친 뒤, 가족 손님, 커플손님 할꺼 없이 현관을 열자 “우와!” 하는 감탄사가 집 안에 퍼졌다. 호박 전구와 유령 행잉, 박쥐 스티커가 만들어 낸 입체적인 무대에 손님들은 넋이 나갔고, 커플 손님은 “집 전체가 포토존이네요”라며 셔터를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판매자였던 어린이집 원장님께 사진을 보내자 “우리 아이들과 즐거웠던 기억이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니 마음이 놓여요”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블라인드 뒤 주황 전구가 천천히 깜빡이는 걸 바라보며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호박 전구 스트링, 거미줄 레이스, 당근에서 건진 어린이집 풀세트, 아이 웃음, 그리고 원장님의 안도. 이 다섯 조각이 가을 내 기록의 자리를 환히 밝혔다.” 전구는 꺼졌지만 마음속 주황빛은 오래도록 남았다. ‘좋은 공간은 사람과 우연이 함께 꾸미는구나’라는 문장을 반복하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