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름밤 불멍, 별빛 그리고 깊은 고요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11.
반응형

마당 한가운데 불멍과, 별멍

 

여름밤, 손님들이 바비큐를 마친 뒤 저는 먼저 모닥불을 지피고 혼자만의 불멍을 3~5분가량 즐깁니다. 그 순간 고요를 가르는 풀벌레 소리와 별빛 아래 춤추는 불꽃이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어 주고, 이어서 손님을 불러와 마시멜로를 나누며 짧지만 깊은 담소를 이어 갑니다. 불멍으로 연결된 이 작은 인연은 연천 야경과 어우러져 특별한 기록을 남깁니다.

마당에 남은 열기, 모닥불 앞 3분의 정적

금요일 밤 아홉 시를 막 넘긴 시각, 바비큐 불판을 치우고 숯불 잔열을 정리하면서 마당 한가운데 새 모닥불 자리를 잡는다. 아직 지면은 낮 동안 달궈진 열기를 머금고 있으나, 장작이 한두 번 튀며 불씨를 품기 시작하면 열기는 불꽃으로 향하고 공기 끝은 도리어 살짝 서늘해진다. 나는 늘 이때 손님을 바로 부르지 않고, 불 앞에 혼자 앉아 탐스럽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다. 굵은 장작은 오렌지색 살을 터뜨리며 툭툭 울리고, 잘게 쪼갠 솔가지는 파삭파삭 불을 빨아올리며 푸른 기름 향을 내뿜는다. 매미 소리가 줄어든 틈새를 풀벌레가 채우며, 어둠이 마당을 덮고 산 그림자가 별빛과 맞닿자 불꽃은 마치 고요 속에서만 들리는 작은 북소리처럼 튀어 오른다. 머리는 조금 전까지의 분주함과, 습기가 만든 무거운 더위 때문에 끈적하지만, 불꽃이 규칙 없이 솟구쳤다가 사그라드는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그 더위가 이상하리만큼 질서를 찾는다. 장작 타는 냄새가 밤공기와 섞여 노을 뒤 남아 있던 마지막 후끈함을 삼키고, 대신 숯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면서 마음 깊숙한 곳의 근육까지 천천히 풀어 준다. 그렇게 삼 분, 길게는 오 분. 시간을 따로 재지 않아도 손목 위 초침이 세 바퀴쯤 돌 때면 제 마음은 모닥불 속으로 한껏 가라앉아 투명해진다. 불꽃이 흩는 잿가루가 호흡 사이로 올라오고, 별빛은 위에서 고요히 내려앉는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속삭임을 남긴다. “충분히 느꼈다. 이제 나눌 차례다.”

불멍이 잇는 소소한 정, 마시멜로와 짧은 담소

장작이 안정된 붉은 불길을 유지할 즈음, 나는 손님들에게 준비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소리 없이 모닥불 둘레를 정리하며 작은 의자 몇 개를 꺼내 놓고, 미리 챙겨둔 꼬치와 하얀 마시멜로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족히 삼십 분 전까지 바비큐 불판 앞에서 왁자지껄하던 손님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불꽃은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잠깐씩 바람을 타고 파닥이는데, 그때 날아오르는 불씨는 눈앞을 스치는 별똥처럼 짧다. 나는 첫 꼬치를 손님에게 건네면서 “살짝만 그을리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하다”라고 귀띔한다. 마시멜로가 불 위에서 천천히 돌 때마다 설탕이 녹으며 갈색 캐러멜막을 입히고, 공기 중에는 달콤한 향이 역동적인 불냄새와 어울려 새로운 레이어를 만든다. 손님들은 꼬치를 조심스레 돌리고, 나는 그 옆에서 은은히 타오르는 장작을 한 번 더 다독인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불꽃은 이야기를 길게 끌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누군가는 손에 든 꼬치 끝을 별빛에 맞추어 “이렇게 밝게 보일 줄은 몰랐다”라고 소곤거리고, 다른 이는 장작 타는 소리 사이 빈틈을 놓치지 않으려 듯 짧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나는 그 틈에 “연천 여름밤은 소리가 많아 조용하다”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풀벌레는 불빛에 잘 드러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욱 성실히 울고, 멀리 마을 끝 가로등 불빛 위 날벌레가 한 무리씩 돌며 밤공기를 또 다른 리듬으로 두드린다. 그 소리와 불꽃, 달콤한 향이 새벽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다. 마시멜로가 껍질을 벗겨 먹기 좋은 갈색으로 바뀔 즈음이면 잠시 고개를 젖혀 별자리를 찾아본다. 북두칠성이 시야 한가운데 떠 있고, 묘하게 기울어진 카시오페아가 모닥불 연기 너머로 흐릿하게 이어진다. 나는 손님들에게 “별이 은근히 많다”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휴대폰 별자리 앱을 켜서 하늘과 화면을 번갈아 비춘다. 그때 또 한 번 깨닫는다. 불멍과 달콤한 설탕, 그리고 조용한 담소가 만드는 길지 않은 시간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쩐지 오래 여운이 남는다.

별빛 아래 잔불, 그리고 남은 온기

밤 열 시 반, 장작이 잔불로 변하자 슬슬 마무리 준비를 한다. 손님들은 반쯤 녹인 마시멜로로 입가를 닦으며 “오늘 잘 쉬었다”는 짧은 인사를 남긴다. 나는 파이어피트 주위를 안전하게 정리하고, 재를 천천히 모아 불씨를 눌러둔다. 컵라면 같은 간단한 야식을 나눌 때도 있지만, 오늘은 다들 배가 부르다며 조용히 숙소로 들어간다. 자리에는 잔불이 남아 붉은 호흡으로 깜빡인다. 나는 마지막으로 숯불에 물을 살짝 끼얹어 노란 불씨를 꺼지고, 뜨거운 재 위로 피어오르는 얇은 김을 보며 짧게 숨을 들이쉰다. 아직 습도 높은 공기가 뺨에 붙어 있지만, 불멍이 남긴 미지근한 냄새는 오히려 피부를 살짝 보호막처럼 감싸 준다. 별빛은 여전히 빛나고, 풀벌레는 방금 전보다 한 톤 낮춰 울기 시작한다. 고요 속에서 나는 속으로 메모를 남긴다. “뜨거운 장작, 달콤한 설탕, 풀벌레와 별빛, 짧은 고요. 이것들이 오늘 한여름 밤 내 기록의 자리를 만들었다.” 문장을 가슴에 접어 두고 집으로 향할 때, 잔불 속 희미한 열기가 발뒤꿈치에 닿으며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밤은 여전히 더웠지만, 마음 안쪽은 차분히 식어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