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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초록 언덕 위 흰색과 붉은색, 굵은 땀방울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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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조경 잡초 제거 후 물주기

 

매년 봄이 되면, 저는 아버지와 함께 파주 나무시장에서 철쭉·꽃잔디·앵두나무 등을 사 와 연천 집 조경과 마당을 새로 단장했습니다. 잡초를 걷어내고 돌 틈을 메우며 꽃과 나물을 옮겨 심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완성된 언덕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수고가 보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벽길 위 계획표, 파주 나무시장으로 향하다

매년 봄 주말에는 아버지와 함께 나무시장을 방문한다. 해가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새벽 나무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겨우내 얼어 있던 흙이 말랑해졌다는 사실이 손바닥보다 먼저 코끝에 닿았다. 마당을 봄꽃으로 덮자는 생각은 겨울부터 자라 왔으나, 진짜 실행은 이른 아침 나무시장으로 향하는 핸들 위에서 시작됐다. 이른 시간에 왔다 생각이 들지만, 여기는 우리보다 훨씬 부지런한 분들로 가득 차있다. 습기 머금은 흙냄새와 새벽 공기가 뒤섞여 주변을 적셨다. 철쭉, 꽃잔디, 앵두·자두 어린나무, 파릇한 허브와 모종들이 연둣빛 삼각형을 만들며 진열대를 채웠다. 나는 목록을 꺼내 철쭉 10묶음, 꽃잔디 4평 분량, 회양목 5묶음, 앵두·자두 묘목 각각 한 그루를 담았다. 가격 흥정이 끝날 즈음 아버지가 트럭 짐칸을 정리하며 “경사면에 철쭉을 붉은색, 흰색 순으로 식목하고 옆에는 꽃잔디를 심어보자”라고 말했고, 나는 머릿속으로 스케치를 그려갔다. 짐칸이 식재용 흙 포대와 화분으로 가득 차자 새벽이 풀리기 시작했고, 연한 주황빛이 트럭 적재함의 초록 잎맥을 한 겹 더 두드러지게 했다. 머릿속에 생각해 둔 일정을 한번 더 정리하며 이동했다.

잡초와의 전쟁, 그리고 꽃과 잔디가 덮인 언덕

연천 집에 도착한 아침 아홉 시, 경사진 마당은 겨울을 버티며 자란 잡초가 무릎 아래까지 솟아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가장 가파른 방향을 기준 삼아 삼단 계단 모양으로 장비를 펼쳤다. 쇠갈퀴로 흙을 긁어내면 말라붙은 뿌리가 ‘툭’ 하고 끊겼고, 그 사이로 겨울 돌 틈에 낀 모래가 부서져 관자놀이까지 흙먼지가 날렸다. 잡초를 뽑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아버지와 나는 아침, 점심도 거른채 묵묵히 잡초를 뽑고, 묘목과 식물들을 심었다. 일자를 잘 맞춰 심기 위해 양 옆에 기둥을 설치하고 중간을 줄로 엮었다. 삽날이 마른 흙을 가를 때마다 금속성과 모래 알갱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무시장 새벽 소음과 겹쳐 뇌리에 울렸다. 꽃잔디는 잔디와 철쭉 사이 빈 땅을 파고들어 녹색 바닥에 분홍색 소용돌이를 심었다. 손안 가득 흙이 차오르다가 뚝뚝 떨어질 때마다 손목 힘줄이 당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회의가 스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철쭉 묘목을 심고 물 주기용 호스를 켜자 물줄기가 경사면을 따라 굴곡진 초록을 적셨고, 물방울이 잔디 잎 위에서 빛나는 순간 몸에서 증발하던 체력만큼 성취감이 차올랐다. 일요일 오후, 앵두와 자두 묘목까지 땅을 굳게 밟아 고정하고 나니 초록 잔디 사이 붉은 철쭉 띠와 분홍 꽃잔디가 엑센트처럼 언덕을 감싸고 있었다. 잡초로 뒤덮였던 경사가 하루 이틀 만에 색이 분할된 화판으로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갈퀴 손잡이에 남은 물집 따위는 자연스럽게 잊혔다.

초록 언덕이 완성된 순간, 기록의 자리에 새겨진 뿌듯함

해가 서쪽 산 자락을 타고 내려올 무렵, 경사면 위에 마지막 물 주기를 마쳤다. 흙 냄새와 새 잔디 냄새, 자두 묘목이 품은 어린 나무 결 향이 겹겹이 쌓여 폐 깊숙이 내려갔다. “고생했다” 아버지의 무뚝뚝스러우면서도 애정 담긴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웃으며 장갑 낀 손바닥으로 흙먼지를 털었다. 발밑 초록이 저녁 햇살과 만나 금색으로 번들거렸고, 그 사이사이 분홍·붉은 점이 파스텔 톤 불꽃처럼 박혀 있었다. 역시나 방문한 손님들은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심는 게 좋을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잡초와의 전쟁, 삽날이 내지른 굉음, 물집이 잡힌 손바닥, 그리고 결과를 바라보는 찰나의 묵직한 해방감. 이 모든 과정이 ‘힘들어도 해 볼 가치가 있다’는 문장을 증명했다. 나는 저녁노을에 물든 언덕을 뒤로하며 머릿속에 짧게 메모했다. “초록 잔디, 붉은 철쭉, 분홍 꽃잔디, 젖은 흙냄새, 아버지의 땀과 웃음, 손님들의 칭찬. 이 여섯 조각이 봄 기록의 자리를 완성했다.” 그 문장이 가슴속에 잔잔히 가라앉자, 잡초더미 위에서 비로소 봄이 완성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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