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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동막계곡, 시원한 여름휴식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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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동막계곡 속, 우리만의 아지트

 

작년 한여름 주말, 연천 동막계곡의 잘 알려지지 않은 구역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무더위는 그대로였지만 맑고 깊은 계곡 물은 몸과 마음을 단숨에 식혀 주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계곡 입구 노점에서 파전과 시원한 음료를 나누며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날의 차분한 풍경과 소소한 후일담을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숨은 계곡을 찾아 떠난 한여름의 약속

작년 7월 셋째 주 토요일, 휴대전화 온도계가 한낮 34도를 가리키던 오후 두 시 무렵, 우리는 연천 동막계곡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알려진 피크닉 구역보다 더 깊숙한 곳, 물가로 향하는 짧은 길을 걸을 때 발밑에서 마른 솔잎이 바삭거리며 부서졌고, 숲 위로 끓어오르던 열기는 체감으로 30도를 훌쩍 넘겼다. 그러나 계곡이 가까워질수록 숨소리에 섞여 시원한 물살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뜨거운 공기와 대조되며 귀를 깨끗이 씻어 주는 듯했고, 옆에서 숨을 헐떡이던 친구도 “소리만으로 땀이 증발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시야가 넓어지고, 알알이 햇살을 반사하는 투명한 물길이 깊고 긴 골짜기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물줄기 가운데 바위가 한가운데 솟아 낮은 폭포를 만들었고, 폭포 아래 자연 수영장처럼 패인 곳에는 오전 내내 볕을 받아 에메랄드빛과 짙은 청록빛이 겹겹이 갈라졌다. 발목까지 물에 담그자마자 피부가 얼얼하게 저릿했고, 발끝에서 종아리까지 타 들어가던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우리가 내는 발소리를 제외하면 쏟아지는 물살, 물방울 튀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꾀꼬리 울음만이 존재했다.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내려다보니 물속 자갈과 돌틈에 숨은 치어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꼬리로 물풀을 쳤고, 깊은 곳의 수심은 2m를 넘는다. 그 깊이 덕분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중간지점은 짙은 회청색으로 변해, 얼핏 만년설 녹은 호수처럼 차갑고 묘하게 신비한 농도를 띠었다. 우리는 물에 몸을 던졌고, 물 밖에서 들리던 매미 소리는 물아래로 한 발자국만 들어가도 곧장 사라졌다. 귀를 스치는 것은 오로지 물살이 차가운 막을 형성하며 귀마개처럼 밀착시키는 웅웅 거림, 그리고 숨 쉴 때 배출되는 기포가 수면을 향해 톡톡 터지는 단순한 울림뿐이었다. 내심 “이렇게 숨은 곳은 사람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두 시간 넘게 물장구치는 동안 다른 방문객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적막한 독점감이 우리 셋을 더욱 들뜨게 했다. 계곡 물은 흐르고 흘러도 고여 있지 않아, 손등을 타고 흐르는 차가움이 곧바로 발끝으로 옮겨 가고, 발끝을 빠져나간 물은 다시 폭포 아래 회오리를 만들며 깊이를 더했다. 그 회오리 아래로 용기 낸 친구가 잠수해 바닥 돌을 집어 올리자, 조약돌 표면은 고운 이끼 대신 유리알 같은 광택을 품고 있었다. 이처럼 투명한 계곡수는 적막하지만 다채로운 빛과 온도를 품고 있어, 몸과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물 밖으로 밀어 올려 주었다.

물놀이 뒤 찾아온 허기, 파전과 음료로 이어진 작은 연회

세 시 반을 넘기자 피부에 햇살이 슬며시 따갑기 시작했고, 저 멀리 겹겹이 이어진 능선 위로 짙은 뭉게구름이 더 우람해졌다. 물 속에서 빠져나와 바위에 걸터앉아 몸을 말리는 동안, 우리 셋은 그냥 맑은 물만 마시기엔 심심하다며 계곡 입구 주차장 쪽 노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양옆으로 우거진 숲 도로를 지나 내려가는 길에 젖은 선풍기를 돌려놓은 듯 몸에서 김이 서서히 증발했고, 티셔츠는 아직 물기를 머금었지만 뜨거운 공기가 그 물기를 조금씩 걷어내어 묘한 냉온 혼합감을 남겼다. 노점에 도착하자 주인분이 “총각들 잘 놀았나”라고 웃으며 남은 반죽으로 파전 두 장과 김치전 한 장을 구워 주셨다. 철판 위에서 기름이 튀며 “치익” 하는 소리를 내는 순간 풍겨온 파 냄새와 김치 묵은내가 허기진 위를 단숨에 자극했다. 가게 앞 작은 평상에 앉아 미지근해진 상온 음료를 마시며 녹음 짙은 산자락과 눈부신 물결을 바라봤다. 막걸리 대신 탄산음료였지만, 그 탄산감 덕분에 입천장에 남아 있던 계곡물 금속성 냄새가 단숨에 씻겨 내려갔다. 파전을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부침이귀에 파릇한 파줄기와 묵직한 밀가루 반죽이 씹히며, 그 짭조름함이 땀으로 흘러나간 염분을 즉석에서 보충했다. 친구들은 “다른 곳에서는 요새 파전 한 장이 이 가격이 아니지”라며 감탄했고, 우리는 평상 아래로 흘러내린 바람결을 느끼며 물에 젖은 발을 털어놓았다. 음식을 다 비우고 난 뒤에는 계곡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비탈길 아래 펼쳐진 골짜기는 빗물에 씻겨 더욱 투명했고, 작은 폭포 아래 둥글게 모인 거품이 금빛 오후 햇살을 받아 무지개색으로 반짝였다. 바위틈 사이에 고인 물웅덩이에서는 조용히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물거품이 찰랑찰랑 물결을 따라 출렁였고, 그 옆으로 비비추가 연보라 꽃송이를 내밀었다. 계곡 물소리는 마음속 숨겨 놓은 불필요한 잡음까지 떠내려 가게 했고, 그 대신 발끝과 어깨 끝에서는 하루 분량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걷다가 “다음엔 낚싯대를 가져오자”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풍경을 해독제로 삼아 온몸의 피로를 천천히 풀어낸 뒤, 해가 기울기 전에 차에 올라 연천 읍내 쪽 마트로 향했다. 간단한 보냉 가방을 두고 시원한 캔맥주 세 개, 치킨 한 마리를 사 들고 돌아오는 길, 차 창 밖으로 스치는 들녘에서는 해 질 녘에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청량한 냄새가 미묘하게 실내 공기와 뒤섞여 왔다. 그 냄새가 소금기 있는 땀 냄새와 합쳐지자 오히려 새삼스러운 위안을 안겨 주었다.

집에서 맞은 짜릿한 마무리, 하루가 남긴 여운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져가는 저녁 여덟 시 무렵, 우리는 민박 거실 소파에 반쯤 널브러져 TV를 켰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 두 대를 마주 돌려놓았지만, 계곡수에 적셨던 옷이 마를 즈음엔 몸에서 본래 체온이 돌아와 온몸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번졌다. 테이블 위에 얹은 시원한 캔맥주 뚜껑을 딸 때 “칙” 소리가 작은 폭죽처럼 터져 나왔고, 치킨 상자를 열자 양념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계곡에서 얼린 체온이 천천히 녹아 머리와 어깨까지 따뜻한 피가 돌자, 죽은 듯 고요했던 사지 끝까지 감각이 살아났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예능을 배경 삼아 오늘 오후 찍어 둔 계곡 사진을 돌려 봤다. 맑은 물속 자갈, 물고기, 튀어 오르는 물보라, 그리고 파전 앞에서 활짝 웃는 셋. 짧은 감상이 맥주 거품과 함께 테이블을 맴돌았다. 그렇게 후덥지근함과 시원함이 교차한 하루는 치킨 뼈를 접시에 남기고 맥주 캔을 전부 비운 뒤에야 완벽한 쉼표를 찍었다. 잠들기 전 세안대에서 얼굴을 씻어 내리며 거울 속 얼굴을 보니 햇볕에 살짝 탄 이마 위로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코를 깊게 들이켜자 아직 손목에 남아 있던 계곡 흙냄새와 파전 기름냄새가 싱그러운 시골 냄새와 겹겹이 포개져 떠올랐다. “물소리는 사라졌지만 여운은 오래간다”는 깨달음이 짧은 문장으로 마음에 내려앉았고, 그 문장을 조용히 마음속 기록의 자리에 덧입힌 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매트리스가 폭 파문을 만들듯 몸 무게를 받아 냈고, 하루 동안 몸에 남아 있던 냉기와 열기가 오롯이 섞여 아주 완만한 온도를 만들었다. 귀에서는 멀리서 풍경송 같은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눈꺼풀은 채 두 번 깜빡이기도 전 깊은 잠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계곡과 파전, 맥주와 치킨이 연결한 하루가 완전한 쉼으로 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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