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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책상 위 노트북 빛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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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창문 밖,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모두 잠든 깊은 밤, 방 안을 밝히는 것은 노트북 불빛뿐입니다. 저는 여름 특유의 눅눅한 더위를 선풍기 바람으로 견디며, 조용히 글을 편집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화면 속 흰빛이 어두운 방을 비출 때, 창문 밖 풀벌레 소리와 따뜻한 밤공기가 어우러져 고요하지만 풍성한 여름밤을 선사합니다.

고요와 빛이 교차하는 시각, 노트북을 켜다

밤 열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간, 마을 길가 가로등이 사각사각한 전등빛을 도로 위에 뿌리고 논둑의 풀벌레가 합창을 시작하면 집 안은 갑자기 속이 빈 듯 적막해진다. 낮 동안 데워진 마루는 아직 미지근한 열기를 품고 있지만, 선풍기 바람이 그 열기를 둥글게 흩어 놓아 방 안은 눅눅하지도, 완전히 시원하지도 않은 애매한 온도로 유지된다. 나는 거실 벤치에서 일어난 뒤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 노트북 뚜껑을 연다. 화면이 하얀 불빛을 뿜는 순간, 어두운 벽과 바닥은 순식간에 옅은 푸른빛으로 변하고, 키보드 위에 남아 있던 낮의 먼지가 미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방에는 커튼이 없어서 빛은 창문 너머로 빠져나가고, 대신 창 밖에서 돌아 들어온 여름 공기가 화면 빛에 닿아 은은한 윤기를 더한다. 푸른빛은 얼핏 차가워 보이지만, 실제 피부에 닿는 공기는 뜨끈하고 달궈져 있다. 텅 빈 방을 노트북 하나가 책임지는 듯, 화면 위 작게 깜빡이는 커서가 어둠 위에서 고동친다. 마우스를 잡은 손끝으로 땀이 조금 맺히지만, 선풍기 바람이 그 땀을 식히며 차가운 막을 만들어 준다. 이 시간, 방 안의 공기는 나와 노트북, 그리고 밖에서 밀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화면 밝기를 한 단계 낮추고, 방 전체가 오롯이 청색조에 잠기는 변화를 천천히 관찰한다. 역시 밤이 되면 방이 깊이를 찾고, 깊이는 나를 한 겹 더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렇게 밤을 기록할 페이지가 조용히 열리고, 손끝에서 자판이 서서히 깨어난다.

키보드 타건음과 여름밤 공명, 깊어지는 몰입

문서를 열어 낮에 쓴 메모를 훑으며 첫 문장을 고치기 시작하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는 선풍기 날개와 베이스 음을 주고받으며 방 안을 채우고, 창문 밖 풀벌레 소리가 그 위에 작은 음표처럼 얹힌다. 손목이 노트북 팜레스트 위에 닿을 때 처음은 시원하지만 다시금 나의 온도로 인해 따뜻해진다. 그 잔열은 햇살이 완전히 떠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여름 특유의 끈끈함을 떠올리게 한다. 잠시 손을 멈추면 방 전체가 고막에 들릴 만큼 조용해지고, 그 고요를 깨우기라도 하듯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짧게 퍼진다. 이어지는 매미 소리는 이미 끝났지만 음계 낮은 풀벌레가 대신 여름밤무대를 차지한다.

문단을 이어 쓰다 보면 책상 위 머그잔에서 물기 맺힌 냉수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화면 속 텍스트가 스크롤을 따라 올라갈 때마다 눈은 잠시 좁은 시야 속에서 오래된 기억을 참조한다. 겨울밤에는 난방 때문에 창문을 닫아 두었고, 타건음이 유일한 소음이었는데, 여름밤은 방밖 자연이 적극적으로 인터루드 연주를 담당한다. 봄밤에는 문장마다 꽃 냄새가 묻어 있었고, 가을밤에는 풀벌레가 아닌 귀뚜라미와 바람이 코러스를 넣어 주었지만, 지금은 습기 머금은 공기 속에서 수분 많은 풀 내음이 글과 글 사이 열기를 식혀 준다. 노트북 화면은 시간이 흐를수록 밝음에서 구름진 푸른빛으로 바뀌고, 화면 아래 키보드 백라이트가 사각사각 발음을 강조하듯 깜빡인다. 텍스트를 고치고 삭제하고 다시 쓰고, 잠깐의 손가락 스트레칭으로 멈추면 방 안은 조용해진다. 눈을 들어 창밖을 잠깐 바라본다. 논물 위로 피어오른 김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기세를 잃고, 나무 위로 떠오른 별 하나가 화면 반사로 두 겹으로 겹쳐 보인다. 나는 어둠을 뚫고 저 별빛까지 닿는 여유 대신, 화면 속 글자에 더 가까운 집중을 선택한다. 그렇게 여름밤은 노트북 불빛과 풀벌레 합창, 그리고 자판의 리듬으로 완성되어 간다.

모니터를 닫는 시각, 하루가 부드럽게 접히다

새벽 한 시까지 시계 초침이 몇 바퀴를 돌고, 노트북 팬이 이따금 높은 고음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숨을 고르는 사이 텍스트는 원하는 모양에 가까워졌다. 저장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 창을 닫으면 방 안 밝기가 급격히 줄어들고, 화면 속 잔상이 서서히 사라지며 눈이 어둠에 적응한다. 선풍기 소리만 남은 고요 속에서 냉수 컵에 남은 온기가 입안을 부드럽게 씻어 주고, 허리를 펴면 어깨 근육이 스르르 풀리며 작은 탄식을 내뱉는다. 나는 노트북 뚜껑을 천천히 닫는다. 플라스틱이 금속에 닿는 ‘딸깍’ 소리가 방 안에 울리고, 그 한 음파가 오늘 남은 집중의 파편을 함께 접어 준다. 컴퓨터가 완전히 잠들기 전에 스탠드를 끄면 방 안은 다시 자연의 어두움에 몰입한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풀벌레가 한 템포 느린 리듬을 연주하고, 노트북이 남긴 잔열이 책상에서 서서히 식어 가며 손바닥에 미묘한 더위를 남긴다. 그 온기마저 공기 속으로 사라질 즈음, 나는 작은 기지개를 켜고 속으로 짧은 메모를 정리한다. 오늘 밤 불빛, 타건음, 풀벌레 소리, 그리고 한 줄 한 줄 다듬은 문장이 합쳐져 하루의 기록의 자리를 조용히 완성했다고. 전등을 끄고 방을 나올 때, 문득 창밖 별빛이 조금 전보다 더 또렷해 보인다. 나는 그 빛을 잠시 바라보며, 내일 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릴 것을 마음속으로 약속한 뒤,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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