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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날 여름비 뒤 마당 흙내음의 저녁 기록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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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날 여름비 뒤 풍경

 

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직후에도 기온은 크게 내려가지 않아 몸이 쉽게 끈적해집니다만, 비에 젖은 마당 흙냄새와 촉촉한 공기에는 분명 특별한 위안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연천에 머무는 동안 제가 직접 느낀 이 미묘한 불쾌함과 잔잔한 편안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찝찝함으로 시작된 저녁, 한 겹 벗겨지지 않은 더위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연천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빗줄기가 끝나는 듯싶더니 이내 더 굵어져 지붕을 두드렸다. 여느 해 여름비라면 들끓던 더위를 식혀 줄 터였지만, 올해 장마는 열기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비가 머무른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방금 내렸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듯 마당은 반짝이는 물막으로 코팅됐고, 저장된 열기는 그대로 남아 습기와 뒤엉켜 뜨거운 이불처럼 허벅지를 감쌌다. 흙냄새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흙알갱이 사이사이 갇혀 있던 구수함이 증기로 변해 땅 위로 올라오면서, 코끝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짙은 향에 가득 찼다. 하지만 숨을 깊이 들이쉴 때마다 폐 끝까지 들러붙는 열기가 불쾌지수를 순식간에 높였고 손바닥은 아무 일도 안 했는데도 땀으로 촉촉했다. 마당을 살짝 밟아 보니 잔디 위에 얇은 수막이 있어 신발이 미끄러질 정도였고, 물기가 스며든 흙은 오전 내내 볶은 커피콩처럼 달궈져 있었다. 나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처마 밑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비가 그쳤음에도 어딘가 먼 산자락에서는 여전히 천둥이 작게 울렸고, 숨죽였던 매미들은 비가 물러갔다는 신호에 맞춰 다시 전력을 다해 울음을 갈아 넣었다. 머리카락에서는 습기가 땀과 섞여 뚝뚝 떨어졌고, 티셔츠 등판은 비를 맞은 듯 착 달라붙었다. ‘왜 이렇게 후덥지근하지?’라는 짧은 탄식이 입안에서 돌다가, 문득 이 고온다습함 속에서만 맡을 수 있는 흙냄새도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풀숲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는 겨울 흙냄새보다 훨씬 질척하고 점도가 있어, 코로 빨아들일 때마다 진한 소금물이 기도를 스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그 향은 불규칙한 여름날 일정에 한 조각 쉼표를 찍어 주기도 했다. ‘물을 따로 줄 필요는 없겠군’ 하고 생각하는 순간, 오전까지 마른 기운으로 시들시들하던 텃밭 채소가 잎맥마다 윤기를 되찾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몸은 여전히 끈적했지만, 마음 한편은 빗속에서 숨 돌린 결과물을 금세 긍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뚜렷이 남은 습도, 하지만 편안한 농작물과 훅 불어온 흙 향

저녁 여섯 시가 가까워질 무렵, 빗물은 이미 잔디 아래로 반쯤 스며들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눅진했다. 선풍기를 마당 대응으로 창문 가장자리에 설치했고, 실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려 문들을 활짝 열었다. 더위가 빠져나가기는커녕 따끈한 증기가 거실까지 밀려들어 벽을 촉촉이 적신다. 그런데 그 찝찝함 한가운데서도 도드라진 건 흙냄새였다. 물기가 밴 흙이 햇빛에 재가열되면서 내뿜는 특유의 향은, 낮게 드리운 습기와 어울려 커피 원두를 갓 볶은 듯 고소하고 진득했다. 냉수를 한 컵 들이켜도 입천장에는 흙 향이 묘하게 배어 있었고, 그 향이 숨을 내쉴 때마다 다시 입술을 맴돌았다. 뒷마당에 나가보니 전날까지 갈라졌던 틈이 물기를 머금어 잔잔한 거울처럼 변했다. 맨손으로 그 흙을 만져봤다. 흙알갱이는 손가락과 손바닥에 점액질처럼 달라붙었다. 그 촉감은 비가 내리기 전과 후를 구분하는 명확한 증거였다. 논물도 수위를 낮추지 못해 오히려 무더운 열기를 떠안은 채 김을 피워 올렸는데, 그 증기에서 몰려드는 냄새가 흙냄새와 연결되어 후각을 한층 짙게 자극했다. ‘이왕 젖은 김에 풀잡초를 당장 뽑아 버릴까’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미끄러지는 흙바닥에서 장화를 신지 않으면 균형을 잃기 십상이라, 나는 대신 둘레를 거닐며 빗물 흐른 자국을 관찰했다. 방금 비에 씻겨 낸 먼지와 잔가지, 지붕에서 떨어진 이끼가 곳곳에 모여 작은 강줄기를 만들고, 흙탕물이 텃밭 가장자리로 흘러들며 채소 뿌리 주변에 얇은 모래막을 남겼다. 채소 잎 위에는 물방울이 수은 구슬처럼 맺혀 있었고, 그 물방울은 등잔불처럼 남은 햇살을 되비추며 탁한 연노랑 반짝임을 만들었다. 강한 햇빛이 기세를 세우는 6월의 애매한 저녁, 그 반짝임조차 무겁게 처진 공기에 눌려 금세 사그라졌지만, ‘물을 따로 주지 않아도 된다’는 소소한 편안함이 마음 한 구석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비가 잦아든 여름 저녁은 늘 같이 습기와 더위가 공존해 불쾌지수를 높였지만, 그 속에서 작물과 흙이 살아나 뿜어내는 향은 내 재빨리 지워 버린 불평에 짧은 쉼표를 찍어 준 셈이다.

애매한 더위 속 작은 위안, 흙 향이 남긴 기록

토요일 아침, 밤새 제법 눅진했던 방 안 공기가 선풍기 바람 덕에 한결 가벼워졌지만 기온은 26도를 훌쩍 지났다. 흙냄새는 여전히 창문 틈으로 밀려와 머리가 작은 숲속에 박힌 듯한 착각을 만들었다. 나는 머그컵에 냉수를 가득 채워 한 모금 삼키며 마당으로 나왔다. 전날 밤, 방충 등 아래 모여들었던 날벌레들은 이미 흙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이른 햇살이 물기를 머금은 잔디를 부드럽게 덮자 풀잎 끝에는 또다시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손등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포개진 습기를 내보내지 못해 묵직했지만, 흙냄새 계열 향이 겹겹이 쌓여 후각을 가득 채우자 기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주말 일정 전 표에 적어둔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도, 그 배경 음악처럼 흙내음은 계속 공기를 번갈아 채워 주었다. ‘어쩌면 뿌듯함이란 건 예상하지 못한 편안함에서 오는 걸지도.’ 비 덕분에 물 주는 노동을 덜 수 있었다는 가벼운 후련함이 여름 더위와 불쾌감을 잠시 눌러주었고, 그 짧은 한숨 돌림은 오히려 주말 시간을 더 촘촘하게 만들었다. 비는 내게서 열기를 빼앗지 못했지만, 텃밭과 마당은 그 빗물에 힘을 얻어 푸르게 살아났다. 그리고 흙냄새는 모든 불만을 잠시 덮어 두며 이 주말의 기록의 자리를 조용히 완성해 주었다. 나는 그 향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다시 한 모금 냉수를 삼킨 뒤 여전히 뜨거운 마당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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