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에 머문 지 이제 2년 좀 안되게 넘기며 2번의 사계절을 모두 겪어나가고 있습니다. 논과 밭, 산과 강, 사람들과 동물들, 모든 것에서 계절의 변화가 분명하게 느껴지며, 뚜렷한 계절은 나에게도 조용한 변화를 남겼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천천히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첫 계절, 낯설었던 여름의 공기
2023년 8월, 나는 연천에 들어왔다. 처음 마주한 이곳의 여름은 무더웠지만, 도시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논과 밭, 바람이 지나가는 산과 들, 그리고 그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들과 곤충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곳의 여름 냄새가 기억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바람은 축축했고, 땅은 뜨거웠고, 개울가 근처에서는 풀 내음이 짙었다. 그 속에서 제비와 왜가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름을 살아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매미 대신 다른 곤충들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걷고 잠시 머물던 모든 곳에 다양 소리들로 채워졌다. 그런 날에는 그냥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느리게 지나가고, 달빛이 논을 스쳤다. 그 순간은 멈춰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하늘도, 이 땅도, 그리고 나도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멈춰 있는 순간에도, 나는 흐르고 있었다
연천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 것 같으면서도, 아주 느리게 진행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계절은 늘 정직하게 바뀌었고, 나는 어느새 그 계절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논의 색이, 사람들의 움직임이, 동물들의 울음이, 그리고 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도 함께. 지금 이 순간, 나는 여름의 문턱에 서 있다. 다시 찾아온 익숙한 공기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다음 계절이 오면, 나는 어떤 감정을 기억하게 될까. 분명 지금은 모르지만, 그 날이 오면 또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이곳에서 배운 계절의 방식이다. 그 변화의 기척을 우리는 놓치지 않고 담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록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