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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걷는 하루, 소음과 고요 사이의 풍경

by 방구석기록자 202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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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찍은 독수리

 

연천에서는 버스를 자주 타진 않지만, 가끔 타게 될 때가 있습니다. 논과 밭, 산과 동네길이 반복되는 창밖 풍경은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하며, 목적지를 지나쳐 내려 걷게 되는 일도 있지만, 그런 소소한 틈들이 오히려 내 하루에 조용한 여운을 남깁니다.

버스 안에서 흐르는 낯익은 풍경과 작은 인사

연천에서는 보통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편이다. 버스를 타는 일은 드물다. 차가 고장 났거나, 가족이 차를 쓰는 날,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이동수단이 버스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이 꼭 불편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이따금 타는 버스는 조금 다른 하루를 선물해 준다. 서울에서의 버스는 언제나 바쁘고 어수선하다. 창밖은 정신없이 바뀌고, 속도감에 따라 감정도 조급해진다. 하지만 연천의 버스는 다르다. 사람이 많지도 않고, 분위기도 조용하다. 버스 안의 소음은 선명하게 들리지만 그 소리가 이상하게 고요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대단한 건 없다. 논, 밭, 산, 동네길. 그리고 그게 반복된다. 그런데 나는 그 반복이 좋다. 익숙해서 좋고, 설명할 수 없지만 편안해서 좋다. 버스 기사님과 주고받는 작은 인사, 그 짧은 순간의 정중함이 이상하게 따뜻하다. 가끔은 정류장에 정확히 내리지 않아도 대충 어느 근처에서 내릴 수 있다. 그 느슨함도 좋다. 나는 그렇게 시작된 이동 속에서, 별 의미 없는 풍경에 시선을 둔다. 가끔은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친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순간을 놓쳐 내리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러면 그냥 그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걷는다. 그 걷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날은 더 오래 기억된다.

지나쳐도 괜찮은 풍경, 다시 걷는 길 위의 나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본다. 논과 밭, 산, 작은 동네길. 이 풍경은 자주 봐왔고,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 장면들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선으로 이 마을을 보는 것처럼. 익숙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감각. 그런 느낌이 들면 나는 그 풍경에 마음을 둔다. 무언가를 생각하려는 것도, 정리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바라본다. 그리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고 내리지 못하면, 다시 걷는다. 몇 정거장을 더 걸어 돌아와도 괜찮다. 걷는 길은 여전히 조용하고, 햇살은 따뜻하다. 창밖에서 보던 논은 바로 옆으로 다가오고, 그 너머의 산은 조금 더 높아진다. 버스 안에서는 지나치던 풍경이, 내 발 아래로 들어올 때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목적지를 놓쳤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다시 걷는다. 그리고 그 걷는 길이 나에게 또 하나의 기억이 된다. 이동은 그저 움직이는 게 아니다. 어떤 날은 그 흐름 속에서 내 감정이 조금 늦게 반응한다. 그래서 놓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연천의 버스는 그런 느슨함을 허락해 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여유가 고마운 날들이 있다.

다시 버스를 타게 된다면

이 글을 쓰고 난 지금, 만약 다시 연천의 버스를 타게 된다면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르겠다.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논과 밭, 그리고 동네길의 반복이겠지만, 그 안에서 더 많은 걸 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느긋하게 흘러가는 감정을 지켜보고 싶다. 창에 머리 기대고 버스 소음을 들으며, 목적지를 놓쳐도 괜찮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다음 버스는 더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때로는 내가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이동 속에서 내 마음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탄다면, 나는 아마도 더 조용히, 더 따뜻하게 그 시간 안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정류장은 어딜까. 어쩌면 언젠가 다시 놓칠지 모르지만, 그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길 위에서 조용히 다시 걸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하루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남게 될 것이다. 이 조용한 이동의 순간도, 결국 우리의 '기록의 자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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