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과 집 앞마당, 도시의 공원에서 마주친 고양이들과의 조용한 만남은 일상 속 특별한 순간이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서로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교감 속에서 저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는 위안을 받습니다.
먼저 다가오는 존재, 왕징면의 고양이 친구들
왕징면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양이들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가와 몸을 비비거나 곁에 앉아 잠시 머물다 가기도 한다. 꼬리를 높이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경계라기보다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고양이들은 이 길 위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길 자체가 짧고 조용한 편이라 머리를 비우고 걷기 좋은 곳인데, 그곳에서 마주한 고양이들은 하루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무언가를 바라고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자리에서 잠시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순간이 된다. 가끔은 내가 먼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이 고양이들이 나를 불러낸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 스테이온빈의 고양이 가족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민박, 스테이온빈에도 고양이들이 찾아온다. 엄마 고양이와 아빠 고양이, 그리고 그들의 새끼들까지 이제는 어느새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에게 밥을 챙겨주긴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거나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그 거리를 잘 알고 있는 듯 자신들만의 선을 넘지 않고 조용히 머무른다. 손님이 없고 마당이 한적한 날에 퇴실 청소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을 때 테라스나 그늘진 돌담 근처 어딘가에서 고양이도 함께 쉰다. 바비큐 냄새가 나는 저녁이면 슬쩍 다가와 그 냄새를 맡고는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가까이 있되 불편하지 않은 거리감,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조용한 동행이 이 작은 공간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이 고요한 순간들은 혼자 있는 날조차 외롭지 않게 만들어준다.
서울에서 마주한 또 다른 고양이, 그리고 그 감정의 연속
며칠 전 서울 낙산공원을 걷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나무 위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주변을 지나가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고양이의 태도는 묘하게 존엄했고, 그 자리를 함께 바라보던 나까지도 조용해졌다. 왕징면의 고양이들, 스테이온빈을 찾아오는 손님들, 그리고 낙산공원에서 만난 낯선 고양이까지.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이지만 그 모두는 내 하루에 조용한 쉼표처럼 남아 있었다. 말이 없고, 가까이 오지도 않지만 그들이 만들어주는 이 느슨한 여백은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들. 그들과 마주한 이 감정들을 나는 매번 놓치지 않으려 조용히 적어두고, 가만히 기억하려 한다. 어쩌면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내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마음의 문장들이 결국 ‘기록의 자리’를 만든다.